이윤 극대화서 사회적 책무로...기업 경영 '룰'이 바뀐다

홍승완 기자() | Posted : Febuary 13, 2021, 06:00 | Updated : June 27, 2021, 09:2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높이는 것"

세계적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지난 1970년 9월 13일 뉴욕타임스에 이러한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기업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라고 못 박은 것이다. 그는 "기업은 이윤 추구 외에 다른 사회적 책임은 없다"며 "기업은 이익 증대를 위해 자원을 사용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 그의 명제는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19년 미국의 쟁쟁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이제 주주 이윤 극대화만이 기업의 운영 목적이 아니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미국 주요 기업 CEO들의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고객과 근로자, 협력사,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을 경영하는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ESG 없다면 소비자 눈 밖으로 'ESC'

이런 사회적 책무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기업 경영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ESG 경영에 시동을 건 것이다. ESG는 환경보호(Environment)·사회공헌(Social)·경영체제(Governance)의 약자다. 즉 기업이 환경보호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투명한 경영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보호(E)는 유통·식품 업계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1월 국내 처음으로 페트병에 라벨을 사용하지 않은 이른바 '무(無)라벨' 생수 아이시스 에코를 출시했다. 롯데칠성음료는 1.5L 제품을 시작으로 6월에 500mL, 2L 등 다양한 용량의 제품을 선보이며 한 해 동안 1010만 개를 팔아치웠다.
 

무라벨생수 아이시스 에코 3종 [사진=롯데칠성음료 제공]


롯데칠성음료는 무라벨 생수를 판매하면서 기존 라벨 포장재를 쓸 때보다 6.8t가량의 포장재 폐기물을 줄였다고 했다. 무라벨 생수로 절감한 라벨을 이어붙이면 총 3020km. 이는 직선거리로 약 325km인 서울과 부산 거리를 약 9번 이동할 수 있는 양이다.

'빨대 없음'도 환경보호(E)에 대표적인 흐름이다. 세븐일레븐은 지난달 26일 '서울 F&B'와 함께 빨대 없는 편의점 커피를 선보였다.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가 'ESG 경영'을 선포한 후 나온 첫 행보다.

세븐일레븐은 빨대 없는 커피를 시작으로 올해 '친환경 상품'을 크게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는 "지속 가능한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이 되기 위해 2021년을 ESG 경영의 원년으로 삼고 향후 10년간 집중적인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영주와 고객, 파트너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당사자로 시야를 넓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취지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카카오 제공]


카카오는 사회공헌(S)에 두 팔 걷고 나섰다. 시작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통 큰 기부' 약속이다. 김 의장은 지난 8일 기부서약도 추진 중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하는 단계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며 기부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 김 의장이 보유한 카카오 주식 가치는 11조원(10일 기준)에 육박한다. 기부 의사를 밝힌 8일 카카오 주가는 45만7000원이었으나, 이틀 동안 7%가량 오르면서 48만9500원이 됐기 때문. 이에 김 의장이 사회에 환원하는 금액은 카카오 주가에 따라 최종적으로 달라질 전망이다.

또한 카카오는 9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에서도 본격적인 ESG 경영 강화를 밝히면서 △카카오만의 방식으로 사회 문제 해결 △파트너, 크루, IT 생태계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 △데이터 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기업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 조성 등 ESG 경영 이정표를 제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배구조(G)는 국내 기업이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주요 대기업이 경영권 승계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지배구조에 적잖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16일 'ESG 중 지배구조가 으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상장기업 대부분은 아직도 창업주나 그 후손이 직접 경영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이 오랜 자본시장 역사 속에서 지배구조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본격화할 수 있는 단계"라고 내다봤다.

특히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가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내 기업들이 지배 구조 개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ESG 분석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주가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기업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들로부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주가 방어 효과를 관찰했다고 밝혔다.

조지 세라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투자자들은 코로나19 같은 악재를 이겨내고 장기 지속가능한 기업을 찾고 있다”며 코로나19로 ESG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ESG에 가장 관심 많은 대기업 CEO는 누구?

그렇다면 국내 CEO 중 ESG에 가장 높은 관심을 두고 있는 CEO는 누구일까. 30대 그룹 총수 중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ESG 경영에 관심도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가 30대 그룹 총수를 대상으로 지난달 1일부터 31일까지 뉴스, 커뮤니티,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정부·공공 등 12개 채널 22만개 사이트에서 'ESG 경영' 키워드가 들어간 포스팅 수를 모두 조사한 결과 최태원 회장이 총 6892건을 기록해 ESG 경영을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237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SK 투자협약식서 발언하는 최태원 회장 (군산=연합뉴스)


실제로 최 회장은 "최근의 돈은 다 ESG로 흘러간다"며 올해 주요 경영 화두로 ESG를 꼽았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말 SK 그룹 CEO 세미나에서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 성과를 중심으로 한 기업가치 평가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ESG를 기업 경영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듯 SK 그룹은 2021년도 조직개편에서 관계사 최고경영자(CEO)들로 구성된 협의체 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협)에 변화를 줬다. 먼저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관계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가속하기 위해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했다. 여기에 기존 에너지·화학위원회를 없애고 환경사업위원회를 새로 만들면서 환경 관련 문제를 다루기 위한 밑그림을 완성했다.

최남수 서정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 "올해는 ESG 중 환경이 특히 부각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가장 가장 큰 전환점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끄는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최 교수는 "국내 기업은 최근 ESG에 의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 기업과 비교하면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아직 ESG가 기업 경영의 핵심축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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